
김보영 (지은이)
"그 종이 내게 어떤 강제도 할 수 없고 이 마음에 한 점의 지배권을 행사하지 않고, 내가 그들로부터 이 자아의 독립을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한 뒤에야, 비로소 이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글을 나는 역시 케이가 천착하는 종교성의 문제로 읽는다. 그런데 내가 겪어보지 못한 어떤 주인-하인의 종교성이 아니라 지극히 세속적인 종교성으로 이해됐다.
다시 말해 나를 속박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또 사랑이라니. 지겹다 싶지만 의미가 있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 구속권을 줄지 협상하는 경험에 비출 때 이 문제는 성립된다.
그러면서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연인에 충실할 때가 있는 거고 소홀할 때도 있는 거 아닌가. 마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24시간 내내 복종해야 한다는 의식이나 믿음 통념 따위가 문제를 일으킬 뿐이다.
하지만 방점은 그런 충실함이 외압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실은 바로 나라는 점이다. 너를 특별하게 대하고 싶어하는 내가 있다. 그것은 쾌감을 준다. 쾌감? 아무튼 사랑 비슷한 감정이다. 그러나 나는 그 쾌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잘 견디어낸 부재, 그것은 망각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간헐적으로 불충실한 것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망각하지 않는다면 죽을 것이기에. 가끔 망각하지 않는 연인은 지나침, 피로, 기억의 긴장으로 죽어간다(베르테르처럼)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벗어나야 할까?
모든 관계는 종교적이다